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따라가는 초장문 역사 여행 – 잊힌 제국의 흔적을 좇다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종종 잊히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두 개의 제국이 있습니다. 바로 삼국 시대의 북방 강국 고구려와 그 계승자로 평가받는 발해입니다. 이 두 국가는 한민족의 역사 속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동북아의 중심에서 강력한 국가 체계를 구축했던 자랑스러운 제국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흔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을 국내외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따라가며, 단순한 여행을 넘어 역사와 정체성, 문화의 깊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중국 지린성 집안: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의 흔적을 걷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졸본에서 시작한 나라를 키워 수도 국내성에 이르기까지,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차지한 북방의 강국이었습니다. 그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 바로 현재 중국 지린성의 집안(集安) 지역입니다.
집안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이 위치했던 곳으로, 지금도 수많은 유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야외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입니다.
1-1. 광개토대왕릉과 비
광개토대왕은 고구려를 중국 동북부, 한반도 남부까지 확장한 전설적인 군주입니다. 그의 능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봉토 무덤과 함께, 한민족 역사상 가장 중요한 비석 중 하나인 광개토대왕비가 함께 위치하고 있습니다.
비문에는 고구려의 역사와 정복, 왜(일본)과의 관계, 왕의 위엄이 상세히 새겨져 있으며, 일제강점기 때 왜곡된 해석으로 인해 큰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복원된 내용을 토대로, 고구려의 국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2. 장군총과 고분군
장군총은 고구려의 고분 건축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구조물입니다.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석축 무덤으로, 정교한 계단식 구조와 무덤 안의 복잡한 통로는 당시의 건축 및 장례 문화의 수준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주변에는 오회분 고분군, 태왕릉 고분군 등이 있어, 벽화 고분을 통해 당시 고구려인의 의복, 주거 형태, 무기, 종교, 예술 등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2. 북한 환도산성과 안학궁: 두 번째 수도의 흔적
고구려는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며, 한반도 중심부로 세력을 확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환도산성과 안학궁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유적들은 현재 북한 지역에 위치해 있어 자유롭게 여행할 수는 없지만, 위성 지도와 사진, 남한 내 박물관의 유물을 통해 그 모습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환도산성은 고구려가 외침에 대비해 지은 대표적인 방어 요새로, 산세를 따라 만든 거대한 석축 성벽이 특징입니다. 성 안에는 궁궐터, 군사 주둔지, 창고, 제단 등이 분포하고 있어 단순한 방어용 시설이 아닌 행정 중심지였음을 보여줍니다.
안학궁은 고구려 후기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지금은 일부 유적만 남아 있지만 당시에는 대규모 궁전과 정원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3. 중국 흑룡강성 닝안: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를 만나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유민과 말갈족이 연합해 세운 발해는 북방 유목문화와 고구려의 계승문화를 융합한 독특한 문명국가였습니다.
그 수도였던 상경용천부는 지금의 중국 흑룡강성 닝안(寧安)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한자로 된 고구려식 건물 구조, 당나라식 도시계획 구조를 모방한 흔적, 불교사찰의 터 등 다양한 문명적 요소가 발견되는 고대 도시입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문자와 도량형을 일부 계승하면서도 자체적으로 새로운 통치 체계를 만들고, 당나라, 일본과의 외교를 통해 동북아에서 국제적 입지를 가진 동아시아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4.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해양 교역의 거점
발해는 단지 육지 제국이 아니었습니다. 동해를 따라 해상 교역을 펼친 해양 강국이기도 했습니다.
이 해양 루트의 중심에는 지금의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지역이 있으며, 이곳은 동경용원부로 추정되는 발해 유적이 다수 발굴되었습니다.
중국, 한반도, 일본을 잇는 해상 루트의 중심에서 발해는 국제 교역과 외교에 능한 국가였음을 입증하며, 일본의 역사서 '속일본기'에서도 그 활약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5. 국내에서 볼 수 있는 고구려·발해 유산
해외 유적 방문이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경우, 국내에서도 고구려와 발해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 벽화 복원본, 장군총 모형, 발해의 청동불상 등 전시
- 국립청주박물관: 발해 유적 발굴 사진과 복식 전시
- 경주 동부사적지: 신라와의 관계 속에서 본 고구려·발해 문화 비교
이외에도 대전, 전주, 광주 등 전국 박물관에서 고구려-발해 특별전을 자주 개최하고 있으므로 문화체험을 원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6. 고구려와 발해의 유산이 오늘날 주는 의미
고구려와 발해는 단순히 과거의 국가가 아닙니다. 그들은 오늘날 대한민국, 북한, 중국, 러시아까지 이어지는 동북아사의 중심에서 존재했던 영토, 문화, 주권, 정체성의 상징입니다.
특히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은 현재 중국 정부가 자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의 핵심 논쟁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유산들을 우리가 알고, 이해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은 단순한 여행 이상의 역사 교육과 주권 수호의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유적들을 걷는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 속 우리의 뿌리를 되새기는 시간이 됩니다.
맺음말: 우리는 왜 고구려와 발해를 따라 걸어야 하는가?
역사는 단지 오래된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입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따라가는 이 여정은 지리적 여행을 넘어 정신적 여정이기도 합니다. 찬란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와 연결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